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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맥아트미술관 현대조형전 “문 밖의 낯선 기호”

현대조형전대표이미지 전 시 명 : 문 밖의 낯선 기호
전시장소 : 유리섬 맥아트미술관
전시일정 : 2014, 9, 16 ~ 12, 8
참여작가
감성원, 강현대, 강혜주, 강희찬, 곽수영, 김기라, 김동선, 김소영
김아영, 김준용, 김지혜, 박미화, 박성원, 신한철, 양태근, 윤태성
이규홍, 이상길, 이성표, 이학주, 이화룡, 정정훈, 차경철, 최정윤

문 밖의 낯선 기호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딴 사람의 눈에 비친 세계에 관해서 알 수 있다.”(프루스트)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유리섬 맥아트미술관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유리조형작가들과 회화, 조각, 도조(도예), 목공예, 장신구 공예, 디자인, 일러스트 등 여러 장르의 작가들이 연합한 전시다. 회화와 공예,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이 교차하고 있고 그것들이 한 몸으로 삼투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유리라는 물질위에 이질적인 재료, 흔적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 작업들이다. 다른 장르 작가들이 하나씩 연결되어 한 쌍이 되어 보여주는 방식으로 둘의 작업이 하나로 온전히 통합된 형국이자 유리 조형이 매개가 되어 타장르, 타매체와 결합한 양상이다. 그렇게 24명이 모여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이루어 냈다.

이 협업작업은 기존 작가들의 개별적인 작업의 자취를 대신해 예상치 못할 낯선 기호를 기술하고 있다. 한 사람의 텍스트위에 또 다른 사람의 텍스트가 얹혀지고 한 물질과 또 다른 물질이 스며들고 있다. 특히 유리라는 물질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혹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이 전시는 유리위에 여러 장르의 작업, 물질들이 접속되어 또 다른 물성을 연출하고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유리가 폭넓은 개방성과 수용성으로 확산될 수 있는 경지를 선보이면서 진행된다. 유리의 견고함과 투명함 안으로 수묵의 드로잉, 선의 맛으로 홍건한 풀의 형상(동양화, 김아영), 흙으로 빚은 두상(도조, 박미화) 등을 비롯해 조각, 금속공예, 디자인, 일러스트 등이 들어오고 겹쳐지고 있다. 그로인해 다분히 이질적인질감이 충돌하고 서로 다른 색상들이 길항하는가하면 부드럽게 휘는 유연한 형태와 질감이 딱딱하고 단호한 물성들과 부딪치고 상호 침투하고 있다. 다양한 물질들의 조우로 인해 이루어진 연출이자 여러 장르와 매체들이 연결되어 이룬 이 전시는 개별적인 작가들의 작업이 존중되면서도 그것이 한 자리에서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는 양상을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리를 매개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그런 전시연출인 셈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의 작업에서 엿볼 수 있는 내용적인 공유성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외형적으로는 서로 다른 장르지만 이들의 작업은 모두 광의의 미술 개념 안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질적인 재료와 방법론을 구사하고는 있지만 시각이미지로의 공유성을 지니고 있는 작업들이다. 각 장르에서 매혹적인 물질의 연출을 구사하는 작가들이 유리를 매개로 상호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 이 전시에서 핵심적인 사항으로 보인다. 유리조형작업이 어떻게 타장르와 접촉하면서 그 접면을 넓혀나갈 수 있는지, 또는 그로인해 어떤 풍경이 새롭게 가설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적 성격이 매우 짙어 보인다는 얘기다. 이렇게 유리조형을 매개로 하나로 결합되어 새로운 작업으로 울림을 은연중 기대해 보게 한다.

미술관 측은 이번 전시가“아티스트들간의 협업체계가 이루어내는 시각표현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기획 아래 마련되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예술매체간의 혼합과 수용이 보여줄 수 있는 현대예술의 새로운 형태”를 조명해보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 매체는 왜 서로 만나야 할까? 만나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을까? 예술의 중요한 덕목이 여럿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나와 다른 이의 사유, 감각, 감수성을 접촉시킨 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인문학과 예술을 통해 우리는 타자와 만나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이른바 그 기호들을 통해 타인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읽어내는 한편‘기호를 기호로 느낄 수 있는 감각’또한 예민하게 가다듬는 훈련을 시도한다. 들뢰즈를 비롯한 탈근대철학이 제기한 종요로운 문제의식 중 하나는‘나’에 집착하는 존재론을 깨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관건은‘나’라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나’를 아우른 세계에서 벌어지는‘사건’이고‘생성’일 것이다. (강신주) 그리고‘나’를 알려면“문밖의 낯선 기호’(들뢰즈)와 부딪쳐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유가 발생한다. 외부와의 마주침이 없으면 사유와 생성과 변화는 없다. 변화의 계기는 낯선 기호인 다른 사람과의 마주침에서 온다. 다른 이의 예술작품에서 온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나’를 벗어나 외부의 입장에 설 수가 없다. 그것을 재현의 한계하고 부른다.‘내’가 남이 될 수 없기에 남이 되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그렇게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이들이 성숙한 인간이고 좋은 예술가이다. 바로 이런 인식 속에서 하나의 장르는 다른 장르와 만나고 하나의 매체는 다른 매체와 만나며 한 작가가 다른 작가와 만나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장르개념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그러니 매체의 교차와 습합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미 20세기 초 피카소의 콜라주작업은 평면회화와 이질적인 사물, 오브제가 결합되는 일이었는데 이는 향후 현대미술의 판도를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업은 장르개념, 나아가 미술이란 개념에 도전 하는 일이었다. 오늘날 현대미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장르와 매체간의 순수성과 경계는 사라져버렸다. 전통적인 장르개념으로는 동시대 미술의 여러 양상을 담아내기 어려울뿐더러 이미 그러한 장르의 견고해보이던 벽들은 망실된 지 오래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여전히 그 장르가 미술계에서 권력적인 영역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분명 이전과는 무척 달라졌다. 장르와 특정 매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중요해졌다. 매체, 재료는 작업의 수단일 뿐이다. 미술이란 작가의 의도, 개념, 이념 등을 물질적으로 가시화하는 일이다. 또한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단순하게는 자신이 선택한 물질을 흥미롭게 연출하고 다시 보여주는 이들이 작가 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작업이 된다.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물질을 다루는 이들이다. 물질을 갖고 유희하고 물질을 통해 연금술사와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이다. 물질을 통해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을 현존시키는 일이기에 작가들은 여러 물질, 매체를 선택하고 활용하면 된다. 특정한 물질, 매체가 선험적으로 작가들의 의식과 사유를 규정하기도 하지만 아울러 특정 매체는 그 매체 특유의 방법론과 그에 연결된 내용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결정적인 사항은 아니다. 더구나 오늘날 다양한 재료의 확산, 미술과 기술의 접목, 매체의 다변화, 종합적 감성의 추구 등에 의해 미술의 지형도는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고 그에 따라 작가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재료를 선택하고 흥미로운 기법을 활용하면서 고유한 어법을 구사하고자 한다.

유리섬 맥아트미술관의 이번 기획전 역시 그런 차원에서 최근 달라진 미술계의 한 양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그 의도가 효과적인 성과를 보이기 위해서는 단지 이질적 장르나 다른 매체와 방법론의 단순한 만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이함과 낯선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기존 작업들에 균열과 틈을 만들어내는 한편 타자성을 통해 자기 정체성의 확산이나 예기치 못한 변이를 적극 도모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이른바 융합이자 퓨전에 해당하는 이번 전시는 여러 장르의 만남을 통해, 타자를 통해 자신들의 작업을 새삼 다시 보는 거리를 확보하게 되었을 것이다. 단일한 장르, 순수한 방법론을 제시하기 보다는 다양한 장르가 교차하고 이질적인 재료들이 혼재하는 방식은 이미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에서부터 익숙하게 접하던 풍경이다. 순수한 매체와 장르의 결벽성을 고수하고 그 매체의 본질을 작업의 내용으로 삼았던 모더니즘미술관은 소멸되고 그 자리에 그동안 배제시켰고 기피했던 것들을 다시 호출하기 시작했다. 기준(정상)이나 규범, 정체성 등은 의심을 받았고 회의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미술의 경우는 1990년대 들어와 이른바 신세대 미술운동을 통해 성장한 젊은 작가들에 의해 일상 삶의 사물, 다양한 오브제가 광범위하게,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현대미술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그 매체를 미술계라는 영역으로 끌어들여 이름을 달아줌으로써 미술을 유지시켜나갔다. 이렇게 새로운 매체와 접목되면서 삶을 연장시키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미술의 생존전략으로 즐겨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미술의 타 영역에의 수용은 그 동안 꾸준히 진행되었는데 그 결과는 스스로 존재기반을 와해시킬 위험을 담보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어쨌든 오늘날 미술이란 영역 역시 모호해졌고 그것을 딱히 어떠한 특성으로 규정할 수 없어졌다. 미술의 정의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회화, 조각, 공예, 사진 등등의 장르구분은 이미 지워진지 오래다. 각 장르는 혼재 되는 한편 타장르와의 이종교배가 오늘날 미술의 보편적인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최근 미술계는 융합과 퓨전이 대세다. 유리섬미술관이 마련한 이번 기획전 역시 그러한 융합적인 전시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이들은 단지 서로 다름을 한 자리에서 확인하고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해버리는, 이른바 화학적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를 통해 유리조형 작업이 얼마나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며 흥미로운 시각이미지를 연출해낼 수 있는지도 가늠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고 본다. 동시에 그 융합과 만남이 단지 유행이나 구차한 연장, 스타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를 절실하게 알기위해 ‘문밖’의 ‘낯선 기호’와 만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